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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속강좌

[이사장칼럼]행복한 삶의 주체는 ‘무교신앙’

283 2017.11.2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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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삶의 주체는 ‘무교신앙’ > 

 


행복한 삶의 주체는 ‘무교신앙’
현묘한 이치 깨우쳐 진리로 인식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거역하지 않고 순응하며 계절에 맞추어 습생(濕生)의 도리를 지켜왔다. 그것은 신과 자연 인간이 일체가 되어야 행복한 삶을 살다가 죽어서는 좋은 곳으로 갈수 있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민간신앙이나 민속의 주체가 되었던 것은 우리의 무교 신앙이 기존이라 할 수 있다.

기도와 주술은 우리 민족 특유의 정신이며 의식이고 또한 사상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 공동체안에 앙금되어 흐르는 주체적 사상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위로는 하늘을 공경하여 현묘(玄妙)한 이치를 깨치며 아래로는 땅의 기운을 살펴서 흥하고 망하는 이치를 깨달아 신령님들이 하강하시는 곳에 사당을 지어 섬겨 왔던 것이다. 부락마다 서낭님들이 하강하시는 곳에 서낭당을 만들어 부락민 전체의 안녕과 번영을 공동으로 빌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조상님들의 슬기와 지혜를 원시적 미신이라고 비웃고 있으며 소명시키고자 모략들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우리의 무교 신앙을 15세기 무렵에 벌써 종교적 토대를 갖추었다. 유교, 도교 등과 같이 견주어 오면서 높은 정신 세계를 이루어 왔던 것이다.

이는 우리 조상님들이 위로는 하늘을 받들며 땅을 의지하며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순수하게 믿으며 천신계 지신계 인신계에 신명님들이 계심을 알아서 거역하지 않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우리 무교 신앙의 본질은 인간이 살아 생전에는 모든 행복을 누리며 살다가 죽은 후에는 영혼이 왕생 점토하여 안락을 얻으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보편타당한 것을 바라는 순수한 종교라 할 수 있다. 살아있는 자의 행복과 죽은자의 영혼을 위하여 기원하는 종교는 없다.

이는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민족의 얼이기도 한 것이다. 먼 옛날 민족의 시조이신 단군께서도 하늘에 기도하실 때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기원을 했던 것이다. 이런 무교 신앙이 활발하게 전해 내려오다가 차츰 사라져 갔던 것은 전쟁과 주변의 강대국들의 지배에 억눌려 은거 민족의 종교요 정기인 민족 신앙을 말살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님들의 혼이자 정기인 정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은 신명님들이 제자들을 키워내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 무교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무교인들의 사명은 크다고 하겠다. 점점 쇠퇴하여져가는 민족문화의 원류를 발굴 보존시키며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그 속에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와 슬기가 깃든 민족정기를 되살려 놓아야 하며 우리는 선택하고 가르치시는 신령님들에게도 제사장으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여야 하며 혼란해져 가는 사회와 점점 사라져 가는 인심들을 그 옛날 순박했던 조상님들처럼 순박하게 선도하여야 하는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음을 명심하여 나부터 신령님들을 받드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며 조상님들의 슬기와 지혜속에 전하여 오는 민족의 정기이며 사상을 잘 간직하여 후손들에게 민족의 우월성을 남겨 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명심하여 겸허한 자세로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민족 문화의 원류며 우리 민족의 공동체관에 흐르는 주체 의식이 우리의 종교속에서 그 맥이 흐르고 있음을 자각하여 국민들에게 심어주어 지금으로부터 1만년 이상 되는 배달겨례의 고대의 역사를 다시 회복하여 위대한 조상들의 얼과 슬기를 찾고 우리 민족의 주체 의식과 자주, 자존사상을 크게 진작시키는 것이 신령님들의 제자들이며 후손된 우리들의 책임이며 사명이 아니겠는가?

이런 사명감과 책임을 위하여서는 우리 무교인들은 꾸준히 자기 학습에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가 알아야 남에게 설명하며 선도할 수가 있는 것이니 우리 모두 공부하는 자세를 늘 몸에 익혀야 하겠다.        



이사장 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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