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타임즈 [이성재 이사장 인터뷰] 발췌 - 새신인(무당)들의 보금자리 대한 경신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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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인(무당)들의 보금자리 대한 경신연합회.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살다보면 곤경(困境)에 처하는 경우가 있어 누군가와 상담(相談)하고 도움을 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격(巫覡)을 찾는다. 지금같이 종교(宗敎)가 없었던 옛 선조들은 무당(巫堂)을 찾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보니 지금도 우리주위에는 무당을 찾는 사람이 많다.
사진= 이성재 이사장
우리주변에서 볼 수 있는 무당이 앞으로는 명실상부한 민족종교인으로 인정받게 됐다.
필자는 토속신앙으로 우리들의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무당의 역사(歷史)나 가치(價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부평초(浮萍草)같이 떠있던 우리민족고유의 신앙인 무격이 법적으로 인정받아 제자리를 찾은데 대한 이성재 대한경신연합회 이사장의 노고를 치하(致賀)하는 것이다.한국의 무속신앙은 여러 의미가 있으나 조직화되지가 않았다. 무속은 길흉화복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맞설 수 있는 이익적인 선조들의 종교다. 무속은 도덕적 완성이나 내세(來世)의 구원보다는. 발밑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해서 고통 없이 사는데 맞추려는 선조들의 전통 신앙이다. 무인들의 굿은 가뭄 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나, 생사와 질병 같은 인간의 삶에 문제가 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하는 의식이다. 이런 무속 신앙의 역사적 근거는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문헌에 는 무당과 무속인의 위치가 공적부분에서는 불교에 밀렸다는 기록이있다고 한다. 삼국시대전의 무속은 국가와 관련된 점복(占卜)과 치병(治病)의례를 담당해 온 반면에 삼국시대 이 후 무속인과 무당들은 점복과 치병의례에서 밀려나 새로운 무속의례가 등장하게 됐다는 설이다. 기우제의식은 고려시대부터 고 재석,칠성 같은 불교의 무속의례에서 유입되었다고도 한다.
이런 역사를 안고 있는 무당인데도 지금까지 국가관리가 없고. 개인의 일상으로 수행하는 데 그쳤다. 그렇다보니 지방에 따른 토속신앙의 틀을 벗지 못했다. 그러자 이성재 이사장은 우리민족의 신앙인 무속(巫俗)을 국민의 품속에 안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1대 이사장인 최남억씨가 지난1971년1월6일 문화공보부(제273호)에 대한승공 경신연합회설립인가를 신청한데이어 1994년3월8일에는 서울시에 대한승공 경신연합회등록을 했다. 그리고3년 후인1997년10월17일 공보처(제59)에 대한승공 경신연합회로 사단법인설립 신청을 했다.
이렇듯 오랜 시간과 여러 과정을 거친 대한경신연합회는 지난2000년 7월17자로 행정안전부(제11호)에 법인명칭변경을 신청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성재 이사장은 지난해 문체부에 가칭(假稱)사단법인 민족종교 경천000 설립인가도 신청했다.
이성재 이사장이 이끄는 경신연합회는 종교를 초월(超越)해 우리민족의 동질성(同質性) 회복과 국조의 조상 화를 주창(主唱)한다. 그리고 천서삼경(天書三經)인 천하(天下)삼재 지도천부경(天符經)과 삼위일체(三位一體)지교 삼일경(三一經)인륜 도덕지감. 참전경의 교리(敎理)를 봉 체한다.
또 국조(國祖)인 단군성조 교조(敎祖)의 본지를 밝혀 환인천제(桓因天祭)상조하나님, 환웅천황(桓雄天皇)계천하나님, 단군성조 국조님의 위업을 이어나가려는 시대적사명감(使命感)과 태극정신(太極情神)을 자수의 길로 정비(整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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